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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슬기사람

[펌] 작가 이영도와의 인터뷰


<작가 이영도와의 인터뷰>

글과 글쟁이의 구분에 대해

Q

<드래곤 라자> 연재하실 때 ‘필자(筆者)’ 대신 ‘타자(打者)’라는 말로 스스로를 칭하셨는데요. 왜 그런 선택을 하셨으며, 작가들의 PC사용이 보편화한 지금도 유효한 명명이라고 보시는지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붓이 아니라 키보드라서 타자라고 한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사용하는 도구가 바뀌지 않는다면 여전히 유효하겠지요.

Q

글과 독자, 작가와 독자, 독자와 독자간 소통이 이뤄지는 창구가 있다는 게 웹2.0 시대 창작활동의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영도님 표현을 빌리자면 ‘글과 글쟁이를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현상일 텐데요. 그런 상황에서 어떤 것이 글과 작가의, 그리고 독자와 작가의 좋은 관계맺음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관계맺음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테고 그것 중 어떤 것이 좋거나 어떤 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야 없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방식은, 구분하기 어려워지더라도 구분할 건 여전히 구분하는 것입니다. 저도 글을 읽을 땐 독자입니다. 하지만 제가 어떤 글을 읽고 있는데 그 글의 저자가 나타나 이건 이런 의미이고 저건 저런 의미이며, 이 부분에선 한 번 웃어줘야 한다고 코치하기 시작하면 ‘당신 다른 약속 없냐’라고 물어볼 겁니다.

제 독서는 글과 저의 일이니까요. 물론 저자는 그 글을 썼지만, 동시에 그 글을 썼을 뿐입니다.
제 독서에 관여할 자격은 없지요. 제가 엄청나게 오독한다 해도 말입니다. 제 오독은 다른 독자들과의 감상 교환이나 저 자신의 재독을 통해 교정될 부분이지 저자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글과 글쟁이는 별개니까요. 그것이 현재 제가 좋아하는 방식입니다.

이영도 작가 (사진 ⓒ조선희)

Q

글쓰는 사람에게 글은 스스로를 투사하는 대상이면서 고민과 노력이 집약된 결과물이기에 흔히 ‘자식’ 같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요. 그런 점에서 작품과 작가를 구분하는 것이 어떤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는지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그 비유가 그대로 적용되면 될 것 같은데요? 어떤 이를 그 부모님과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어떤 책을 읽는 건 누군가와 사귀는 것과 다소간 비슷하다고 봅니다. 애인의 부모를 완전히 무시할 순 없지만 어쨌든 연애는 일차적으로 자신과 상대방의 일이지요. 그리고 애인이 사랑스럽다면 그이를 낳아준 부모님께 정말로 감사할 수도 있겠지요. 하하. 딱 그 정도로 구분하면 될 것 같은데요.

작품의 변화에 대해

Q

작품이 자아내는 분위기 혹은 수용자에게 불러일으키는 생각의 카테고리가 다르다는 점에서< 폴라리스 랩소디>를 경계로, 작품을 전기(<드래곤 라자>, <퓨처 워커>)와 후기(<폴라리스 랩소디>, <눈물을 마시는 새>, <그림자 자국>)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가름이 의미가 있다고 보시는지, 혹 의미가 있다면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음. 그럼 전 지금 말기군요. 하하. 글쎄요. 그렇게 구분할 수도 있고, 중기를 넣어서 3개로 구분해 볼 수도 있고,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서 타자(打者)의 게으름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까 읽는 분들이 말입니다. 전 그 해석들 중 어떤 것이 맞다, 틀리다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드래곤 라자> 출간 10주년(2008년) 기념 문장과 10주년 기념 양장본 1권

Q

“판타지는 판타지로 즐길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는데요. 하지만 이미 판타지도 예술 비평의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같은 변화의 길을 걸은 지난 10년 동안 집필한 작품에서 변화를 느끼고 계신지, 만약 변화가 있다면 어떤 점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음… ‘판타지는 판타지로 즐길 필요가 있다’라는 말이 ‘판타지는 비평을 거부한다’, 혹은 ‘판타지는 비평이 필요없다’ 같은 말로 해석되는 건가요? 제 형편없는 말재주를 자책해야겠군요. 판타지는 판타지로 읽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반지의 제왕>을 현실의 조악한 알레고리로 취급하여 ‘백색’의 간달프가 돌아온 ‘서부’의 왕에게 대관하는 오리엔탈리즘 문학으로 읽는 것은 <반지의 제왕>에서 많은 것을 놓치는 일인 듯합니다. (저런 무지막지하기까지 한 논리가 허용된다면 작품 내에서 인류를 여러 차례 멸종시킨 커트 보네거트의 문학은 안티 휴머니즘 문학이 되겠지요. 슬프게도.) 이것은 감상론의 문제인 겁니다. 판타지는 판타지이지 현실의 협소한 알레고리도, 무서운 시뮬라크르도 아닙니다. 가장한 현실도 아니고 현실을 추방한 다음 그 자리를 대체하지도 않으니까요. 우리는 환상으로 갔다가 뭔가를 얻거나 내준 다음 현실로 돌아올 뿐입니다. 이 과정은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에 정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판타지의 ‘환상성’은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와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판타지는 이제 비평의 대상이 되었다? 저 선언을 받아들인다면 이 문학의 넓은 초원에는 예전부터 항상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고귀한 장르도 있겠군요. 하지만, 도대체 어떤 장르의 글들이 항상 ‘예술적’으로 쓰여질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런 선민 장르, 브라만 장르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장르든, 어떤 대가든 비평할 가치도 찾을 수 없는 태작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어떤 장르든, 어떤 신인이든 비평할 가치가 있는 문제작, 명작을 내놓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고, 따라서 저는 무엇이 ‘변화’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작가 이영도에 대해

Q

판타지 장르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국문과 나오셨는데 국문과에서는 판타지 같은 장르 소설 쓴다고 하면 교수님들이 나무라시지 않나요?

졸업할 때까지 제가 소설을 쓸 줄은 몰랐습니다. 교수님들과 트러블 같은 것은 없었고, 판타지라는 장르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판타지가 우리나라에 막 들어오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아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대만, 중국, 일본에서 나온 <드래곤 라자> 대만, 중국, 일본에서 나온 <드래곤 라자>대만, 중국, 일본에서 나온 <드래곤 라자>대만, 중국, 일본에서 나온 <드래곤 라자>

Q

독자와의 교류가 없는 작가신데, 독자 입장에서는 작가님의 평소 생활이 많이 궁금합니다. 취미는? 글을 쓰는 시간은 정해두시나요? 한국 작가의 다른장르 소설도 읽으시나요? 최근에 읽은 작품이 있다면?

위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글은 글이고 글쟁이는 글쟁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글과 독자와의 관계에 끼어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멀리서 독자가 제 글과의 만남을 갖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취향에 맞습니다. 최근에 본 한국 작가는 최인호 선생님의 <별들의 고향>입니다. 그 밖에는 공포소설단편선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일상은 상당히 불규칙합니다.

Q

소설만큼 비소설도 많이 보실 것 같습니다. 특별하게 재미있게 보신 과학 분야의 책이 있으신가요? 앞으로 SF가 강한 작품을 쓰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지금 당장 떠오르는 작가로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도킨스 등이 있습니다. SF를 특별히 쓰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Q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권하신다면?

<반지의 제왕>을 추천하고 싶은데, 이젠 워낙 유명해진 책이라 더 추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책장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니벨룽겐의 노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거 읽고 <반지의 제왕> 읽으면 더 재미있지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작가 소개한국형 판타지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 이영도

1972년에 태어나 두 살 때부터 마산에서 자라난 마산 토박이로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 1997년 가을 컴퓨터 통신 ‘하이텔’에 판타지 장편소설 <드래곤 라자>를 연재했다. 13000여 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컴퓨터 통신의 폭발적인 부흥의 전기를 마련했다. <드래곤 라자>는 일본, 중국, 대만, 홍콩, 태국 등에서도 출간됐을 뿐 아니라 라디오 드라마, 만화, 온라인 게임, 모바일 게임 등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퓨처워커>, <폴라리스 랩소디>, 단편집 <오버 더 호라이즌>, <눈물을 마시는 새> 등을 발표했다.

 

 

http://book.naver.com/todaybook/todaybook_vw.nhn?mnu_cd=naver&show_dt=20090131  <-퍼온 곳


 

  사실상 나를 글쟁이의 길로 이끈 사람. 나는 아직도 누가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드래곤 라자'를 권하곤 한다. 드래곤 라자를

읽었다고 그러면 세월의 돌.